건축의 근원, 한국적 공간의 본질 :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과 영속성을 바탕으로

[vc_row][vc_column el_class=”postpost”][vc_message icon_fontello=”0″]‘아키텐 포스트’옛 아키텐 회원현 아키텐 회원들이 ‘건축’에 관련해 남긴 글을 모으는 아카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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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유선재[/vc_column_text][/vc_column][vc_column width=”3/4″ el_class=”postpost”][vc_column_text]

Ⅰ. 서론

 

What was has always been.

What is has always been, and

What will be has always been. 

– Louis Kahn  

시간이 지남에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란 무엇인가. ‘본질’이라는 것은 무수한 정보와 견해가 홍수를 이루는 현대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생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많은 건축물들은 내부를 철저히 숨기고 아름다운 외면만을 보여주려 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신을 계속해 다른 모습으로 감싼다. 그러나 그러한 가면과 외피는 일시적일 뿐, 지속될 수 없다.

 

불멸의 건축가라는 칭호를 받는 루이스 칸은 건축의 본질을 파헤치려 한 가장 위대한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건축의 본질이라는 것을 어떻게 파악했으며, 그것을 건축을 통해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는가? 그리고 한국 현대 건축의 새 지평을 열었던 4.3그룹[1]은 이를 어떻게 한국적인 속성으로 변용하였는가? 필자는 루이스 칸의 건축의 의미와 그것이 한국 현대건축과 가지는 연결고리, 그리고 4.3그룹의 한국 건축에 있어서의 영향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Ⅱ. 루이스 칸: 질서의 건축

 

 

  1. 루이스 칸의 생애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빛바래기는커녕 어떤 현대 건축가와도 비길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감[2]을 보여주는 루이스 칸. 그의 건축은 현대 건축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지금도 건축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01년 2월 20일 러시아의 에스토니아 지방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칸은 1906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 필라델피아의 빈민가에 정착하였다.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건축공부를 시작하였고, 보자르식 교육[3]을 받았다.

 

경제대공황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건축가들 중 하나였던 칸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50대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항상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오더(Order)와 폼(Form), 룸(Room), 봉사하는 공간(Servant Space)과 봉사받는 공간(Served Space), 건축 과정의 강조는 모두 칸이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했던 개념들이었다. 오더와 폼을 통해 그는 ‘사물이 존재하는 질서’를 뛰어넘어 ‘공간이 되고자 하는 바’ 혹은 ‘건축의 존재’를 추구했다.[4] 이 ‘건축의 존재’는 적합한 룸(Room)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룸은 구조에 의하여 한정되는 완결적인 공간의 단위이며, 자연광에 의해 결정체적인 질을 갖고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그의 룸에 대한 생각은 다음을 통해 알 수 있다.

 

“건축 공간은 내부 자체에서 그 구축 방식의 특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어떤 구조를 선택할까 하는 문제는 형태에 공간을 주었기 때문에 어떤 빛을 선택할까 하는 문제와 같은 의미이다.”

루이스 칸[5]

 

칸의 건축이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은 봉사 받는 공간(Served Space)과 봉사하는 공간(Servant Space)로 나뉘어, 봉사하는 공간은 주 공간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그동안 숨겨져 왔던 부분에 고유의 공간을 배정해, 숨기거나 은폐하는 대신 존재하게 한다. 이는 그가 갖고 있던 건축 과정을 강조해야 한다는 사상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그는 건물의 구조나 건설 방식에 있어 진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형성 과정을 보여 주듯 거푸집 고정물(form tie)을 그대로 남겨두는 등의 생산기록을 남겨주는 그의 방식은 건물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6] <그림2-1>

1

<그림2-1> 루이스 칸의 건축 곳곳에서 보이는 시공의 흔적. (솔크 연구소)[7]

 

루이스 칸이 가졌던 일련의 개념들은, 정리하자면 ‘건축의 본질을 향하는 진솔한 공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단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개념들은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건축의 정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 오더와 폼

 

루이스 칸은 건축의 본질을 쫓는 건축가였다. 그에게 있어 설계란 건축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8] 과정이었다. 다른 건축가들이 시대정신(Zeitgeist)를 외치며 저마다의 건축에 대한 의견들을 강력하게 피력할 때, 그만은 말이 아닌 건축 그 자체로 진정한 건축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더(Order)를 찾는 것이었다. 이런 오더에서 시작된 고찰은 건축물 내에서 각각의 존재가 어떤 성격을 지닌,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질문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떤 사물은 단지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당신이 그것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의 한정된 존재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갈구한다. 왜냐하면, 존재가 당신을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은 표현을 향한 당신의 마음속에서 존재와 실존을 구분한다. 당신이 어떤 사물에 실존을 부여하고자 할 때는 자연과 상의를 해야 한다. 바로 이 시점이 디자인이 시작되는 때이다. … 형태는 “무엇(what)”이고 디자인은 “어떻게(how)”이다. 형태는 비개인적인 반면에, 디자인은 디자이너에 속한다.

루이스 칸[9]

 

칸에게 있어 어떠한 시설에 필요한 질서와 형태는 정해져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곧 오더(Order)와 폼(Form)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오더와 폼은 건축가가 그 시설의 본질을 탐구하다 보면 나타나는 그 무엇이었다. 그 근원적인 상태를 탐구하여 건축적으로 해결하는 것[10]이 건축가의 의무였고, 그것을 디자인이라 불렀다. 그렇게 그는 건축이라는 것을 ‘건축가의 영역이 아닌 것’과 ‘건축가의 영역’으로 나뉘었다. 그의 가장 위대한 건축으로 손꼽히는 킴벨미술관(Kimbell Museum, Forth Worth, Texas 1966-72)에서 이러한 그의 방식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1. 킴벨 미술관

 

앞서 말했던 방식과 같이, 킴벨 미술관에 대한 구상은 ‘미술관의 본질’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시작한다.

 

“빛의 분위기가 보는 데 관련되면 그림은 다른 상황을 제공한다. 이것은 무엇의 본질로서 자신의 생각을 결정하는 또 다른 예이다. 진정으로 그것이 당신이 회화를 감상하는 장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루이스 칸[11]

 

당시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는 자연광 대신 인공적인 빛을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데[12]에 반해, 칸은 미술관에서 빛, 그중에서도 자연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술관 내에 온화하고 은은하게 퍼지는 자연광을 만들기 위해 칸은 구조를 절단하여 지지 기능과 조명을 하나로 엮는 방식을 통해 건물이 태양을 향해 열리도록 했다.[13] 다시 말하자면, 기존에 존재했던 볼트 구조를 사용했으나 그것은 형태상의 차용일 뿐, 실제로는 거푸집과 포스트텐션 공법으로 커브형 콘크리트 빔을 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천창 밑에는 칸이 ‘자연광 고정장치’라 부른 조명 확산판이 있어, 한낮의 강렬했던 햇빛마저도 차분한 은색 빛이 되어 볼트 아래의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된다.[14] <그림2-2>

23

<그림2-2> 킴벨미술관의 외부와 내부. 콘크리트 셸을 지지하는 기둥(上)과

내부로 은은하게 퍼지는 은은한 자연광(下)을 확인할 수 있다.[15]

 

4개의 기둥과 길게 늘어진 콘크리트 셸로 구성된 이 구조는 더 이상의 눈속임 없이 진솔하게 나타난다. 기둥들과 함께 공간을 구성하는 트래버틴 벽은 다만 콘크리트와의 대조를 통해 이것이 비 내력벽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는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증거를 볼 수 없다면 공간은 공간이 아니다’[16]라고 말하던 칸의 생각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루이스 칸은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자신의 건축을 진행했다. 한 건축물이 가져야 하는 본질을 고려해 오더와 폼을 찾아냈고, 그것들은 그의 건물 속에서 진솔하게 표현되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건축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직설적으로 투명하게 나타내는 것이었고, 그의 일련의 위대한 작품들은 칸이 실제로 그 목적을 이룩하는 데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Ⅲ. 4.3그룹이 추구한 건축의 본질, 근원적 건축

 

 

그렇다면 한국 건축에서 현재 큰 비중을 차지하는 4.3그룹은 현대 건축 전반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 이 건축가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4.3그룹이 1994년에 ‘인도의 르 코르뷔지에와 칸’이라는 주제로 건축기행을 다녀왔다는 점과 승효상의 『건축, 사유의 기호』에 나타난 문구를 보자면 그들이 칸의 건축을 직접 접했고, 영향 또한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빛은 때로는 벽에 부딪힌 물처럼 떨어져 내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폭포처럼 느닷없이 벽을 뚫고 들어오기도 한다.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환하기도 하고 은밀하기도 한 이 빛들은 마치 교향곡을 연주하듯 그 전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 그가 말한 ‘침묵과 빛.’

승효상[17]

 

4.3그룹 중에서도 특히 승효상과 민현식은 한국의 본질에 대한 해석에 있어 동질성을 보이는데, 둘이 찾은 모티프는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비움의 구축(Structuring Emptiness)”이라는 이 매력적인 언설(言說)은 지난 10여 년 나와 승효상 선생이 고유해 왔고, 서로 각기 개별적인 사유와 실천의 차이에 다라 적절히 발전하고, 변용되어 왔다. 한국 전통건축의 “마당”에서 태동된 이 건축 공간 개념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건축이 공히 이 땅의 건축에 뿌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이는 한국에 터를 닦은 건축가로서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일 수 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된 “비움”이라는 공간개념은 “중성적 공간(Neutral Space)”, 특별한 불확정성 공간(Specific Indeterminate Space)”, 자유의 공간(Free Space)”, “미리 정의되지 않은 공간(Indefinite Space)”, “구속되지 않은 공간(Uncommitted Space)” 등 다른 어휘로 이야기되기도 했고, 이들이 공간에서 땅 그리고 도시로 개념이 확장되면서, “건축적 풍경(Architectural Landscape)”, “땅의 공간(Landscape)” “어반 보이드(Urban Void)” 등으로 말해지기도 했다.

민현식[18]

 

둘은 마당의 존재 이유를 ‘비움으로 인한 채움’으로 본다. 건축물의 비움은 건축물이 아닌 존재들로 하여금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며, 그렇게 만들어진 수용적인 공간에는 갖가지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순간순간마다 다른 풍경을 만든다. 일기, 계절, 자연, 소리 등의 타자들이 채워나가기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했던 공간’은 그 안에 담기는 이로 하여금 실질적 존재로써 ‘그 공간에 현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이들의 비움이란 역설적이게도 생성의 공간이자 기다림의 공간이 된다.[19]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에 바탕을 둔 두 건축가의 작품은 비움을 구축하는 방법론적인 차이를 보일 뿐, 건축적인 목표에 있어서는 사뭇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승효상은 수백당(守白堂)(경기도 남양주군 화도읍, 1998)을 통해 도시를 벗어난 전원에서 집이 인간과 자연에 대해 가져야 하는 태도를 제시한다. 그는 방들 사이사이에 비워진 공간을 만들고, 그것을 마루나 흙, 돌, 물과 같은 요소로 채워 ‘공백’을 만든다.[20] 한편, 경치가 트인 측으로는 창을 둠으로써 내부공간에서 전원적 풍경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며, 그 앞에는 외부와의 매개체적 수단으로 테라스를 사용한다. 이렇게 매스와 매스 사이의 ‘빈 공간’들은 사람, 공간, 풍경의 사이사이에서 계속해서 타자를 통해 채움으로써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비슷한 시도를 하는 민현식의 접근은 대전대학교 제2기숙사(대전광역시 동구, 201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전대학교 제2기숙사에서는 매스를 두 개로 분절하여 그 중 하나를 지형에 따라 꺾는다. 이 둘의 사이가 하나의 계단을 가진 마당이 된다. 그리고 기존에 많이 사용되던 중복도형 기숙사를 벗어나 편복도로 구성해, 그 복도들은 마당을 향하도록 하여 ‘사람들이 서로를 지나치고 시선이 교차하는 곳’으로써의 마당의 속성을 강조한다. <그림3-1>

 

두 작품을 보자면 두 건축가의 건축을 하는 데에 있어서의 접근 방법은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인 개념은 같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수백당이 대전대학교 제2기숙사와 비교해 교차나 지나침의 속성보다는 사색적인 공간이 부각되는 것은, 여러 명이 공존하는 공동주택이 아닌 한 가족을 위한 주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4

<그림3-1> 수백당의 실내에서 본 마당과 풍경의 전경(좌)과

대전대학교 제2기숙사의 마당(우).[21]

 

 

Ⅳ. 결론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승효상과 민현식은 시대 말이 가져야 하는 시대정신을 주창하는 동시에, 한국적인 건축의 본질을 찾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계속해 이어왔다는 것이다. 본디 ‘본질’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 것인데, 시대에 맞는 건축을 위해 그 본질을 찾아 차용한다는 점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거니와, 차용이란 한편으론 원래의 것에서 멀어져 감을 의미한다. 한국적 건축의 본질을 찾았다 치더라도 그 건축을 발전시킴에 있어 계속해서 본질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건축에서 4.3그룹,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승효상과 민현식이 기여한 바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분명 한국 전통 건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건축적인 입장에서 일면 타당하게 분석했으며, ‘그것을 한국 건축에서 어떻게 차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왔다. 그리고, 현재는 그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모범답안을 어느 정도 작성한 듯하다.

 

그러나 그 ‘비움’이라는 것이 정녕 한국성을 띤 건축이 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속성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인 듯하다. 그들은 한국적 건축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 한 또 다른 현대 건축가일 뿐, 계속해서 한국적 건축의 본질을 지키려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Ⅴ. 참고문헌

 

  1. 단행본

 

– 존 로벨, 『침묵과 빛』, 2009, spacetime

– 김낙중・정태용,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살림

– 데이비드 B. 브라운리・데이비드 G. 드 롱, 『침묵과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 2010, 미메시스

– Peter Blundell Jones, <Modern Architecture Through Case Studies>,

2002, Architectural Press

– 민현식 외 2 共著, 『비움의 구축』, 2005, 동녘

–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2004, 돌베개

– 민현식, 『건축에게 시대를 묻다』, 2006, 돌베개

– 승효상, 『빈자의 미학』, 1996, 미건사

– 김현섭 외 8 共著,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 「4.3그룹의 모더니즘」, 2014, 집

 

  1. 참고 논문

 

– 배동준, 「미니멀리즘 건축공간에 나타나는 표현특성에 관한 연구-승효상과 루이스 칸을 중심으로-」, 2005, 중앙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 참고 사이트

– http://blog.naver.com/kkhfile

– http://www.metropolismag.com/

– https://www.flickr.com/photos/galbraith/

– http://www.architectmagazine.com

– https://www.kimbellart.org

– http://blog.naver.com/rookee77

– http://www.ulsankia.or.kr

 

 

 

 

 

 

 

 

 

 

 

 

Ⅳ.추가자료

 

  1. 킴벨 미술관(1966~1972)[22]

 

1966년에 킴벨 미술관은 초대 관장 리처드 브라운의 요구-“갤러리에는 자연광이 들어와야 하며 인간적인 스케일이어야 한다.”와 루이스 칸의 착상- ‘하늘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들로 이루어진 건축’이 맞아 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 모두 거대 규모의 전시회와 피곤한 교훈주의는 질색이었기 때문에 미술관에 전시될 중간정도 크기의 그림들에 잘 어울리는 가정적인 스케일의 건물을 구상했다.[23]

 

5

<그림 6-1> a. Square Plan, 1967, 봄, b. H-Plan, 1967, 여름, c. C-Plan, 1968, 가을[24]

 

칸의 설계안은 모두 세 번 변경되었다. 변경을 거치며 미술관은 좀 더 아늑하고 작은 스케일로 변했고, 모듈식 볼트 시스템을 입면에 적용하면서 고전주의는 한층 강화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실들의 규모는 작지만 공공공간의 조직은 놀라우리만치 직접적인 공간이 탄생했다. 로비에서는 마치 부유한 수집가 저택의 현관홀처럼 실질적으로 건물의 모든 공공 부분을 볼 수가 있었으며, 지루해 할 방문객을 위한 작은 카페와 서점이 마련되었다. 또한 식물을 앞뜰에 질서정연하게 심어 계산된 병치의 효과를 만들어 냈다.[25]

 

 

6

<그림 6-2> a.단면도 스케치, 1967.09.22, b. 단면 스케치 1967, 가을[26]

 7

 

<그림 6-3> a.단면의 빛 스터디, b. 천창과 조명기구 그리고 ‘cycloid vault’ ,1968년 초[27]

 

내부적으로 칸은 처음부터 설계의 기본단위를 배럴 볼트 천장이 달린 방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설계 작업 대부분은 반원형 볼트에 집중해서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구조와 조명의 통합시스템에 의해 규정된 방들의 연속체가 탄생했다. 칸은 건축 역사상 동등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채광창 시스템을 창조했다. 오래전부터 제안했던 바로 그 방식-구조를 절단하여 지지기능과 조명을 하나로 엮는-으로 건물을 태양을 향해 열리게 한 것이다.[28]

 

 


 

 

[1] 4.3 그룹: 1990년 4월 3일 30,40대 소장 건축가들(곽재환, 김병윤, 김인철, 도창환, 동정근, 민현식, 방철린, 백문기, 승효상, 우경국, 이성관, 이일훈, 이종상, 조성룡 14인)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그룹이다. 이들은 각종 세미나와 답사, 전시회를 통해 기존의 건축계의 경직된 관례와 학연과 지연을 떠나 자유로운 건축 담론의 장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김현섭 교수(고려대)는 4.3그룹에 대해 비록 통일된 지향점이 없고 각자의 경향이 다름으로 비판받기도 하였으나 젊은 세대의 건축가들이 사회를 향해 자신들이의 목소리를 모았다는 점과 이들은 한국 건축계에 있어 자기의 건축을 ‘말’로 설명하려 했던 첫 세대로서 그 의의가 있다고 평하고 있다. 출처- 김현섭, 「한국 현대건축의 진화, 그 보편성과 특수성」,건축문화, 2011/ 김현섭, 「4.3그룹의 모더니즘」,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 2014

[2] 데이비드 B. 브라운리 ∙ 데이비드 G. 드 롱, 『침묵과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 2010, 미메시스, 10p

[3] 보자르식 교육:   에콜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의 교육방식, 에콜데 보자르는 회화, 조각가, 건축가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프랑스의 공적 미술교육기관으로 제 2 제정기(1852~70) 및 그 직후의 명성은 세계적이었다. 에콜 데 보자르는 건축교육에 있어 보수주의적 경향을 띠었으며, 특히 상세하고 치밀한 도면표현과 풍부한 장식조각 적용에 중점을 두었다. 에콜 데 보자르의 교육은 19세기 후반의 역사주의 양식에 치우쳐져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합리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출처 – 미술대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4] 김낙중・정태용,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살림, 32p

[5] 김낙중・정태용,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살림, 34p

[6] 김낙중・정태용,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살림, 36p

[7] <그림2-1> http://www.metropolismag.com/, https://www.flickr.com/photos/galbraith/

[8] 김낙중・정태용,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살림, 32p

[9] 존 로벨, 『침묵과 빛』, 2009, spacetime, 86p

[10] 김낙중・정태용,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살림, 32p

[11] 김낙중・정태용,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살림, 71p

[12] Peter Blundell Jones, <Modern Architecture Through Case Studies>,

2002, Architectural  Press, 236p

[13] 데이비드 B. 브라운리・데이비드 G. 드 롱,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미메시스, 235p

[14] 데이비드 B. 브라운리・데이비드 G. 드 롱,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미메시스, 239p

[15] [그림2-1] http://www.architectmagazine.com

[그림2-2] https://www.kimbellart.org

[16] 데이비드 B. 브라운리・데이비드 G. 드 롱, 『루이스 칸 건축의 본질을 찾아서』, 2010, 미메시스, 235p

[17]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2004, 돌베개, 192p

[18] 민현식 외 2 共著, 『비움의 구축』, 2005, 동녘, 9p

[19] 강혁 외 2 共著, 『비움의 구축』, 「건축가의 초상」 2005, 동녘, 40p

[20] 배동준, 「미니멀리즘 건축공간에 나타나는 표현특성에 관한 연구-승효상과 루이스 칸을 중심으로-」,

2005, 중앙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92p

[21] 그림 자료- http://blog.naver.com/rookee77, http://www.ulsankia.or.kr

[22] 정세현, 「루이스 칸과 그의 건축에 대하여」, 건축의 장 발제문, 2015, 3~4p

[23] 데이비드 B. 브라운리, 데이비드 G. 드 롱 共著, 김희진 譯, 『칸: 침묵과 빛의 건축가』, 2010, 미메시스,228p

[24]그림 자료- Heinz Ronner, Sharad Jhaveri 共著, 『Louis I. Kahn: complete work 1935-1974』, 1987, Birkhäuser, 346p

[25] 데이비드 B. 브라운리, 데이비드 G. 드 롱 共著, 김희진 譯, 『칸: 침묵과 빛의 건축가』, 2010, 미메시스,235p

[26] 그림 자료- Heinz Ronner, Sharad Jhaveri 共著, 『Louis I. Kahn: complete work 1935-1974』, 1987, Birkhäuser, 345p

[27] 그림 자료- Heinz Ronner, Sharad Jhaveri 共著, 『Louis I. Kahn: complete work 1935-1974』, 1987, Birkhäuser, 345p

[28] 데이비드 B. 브라운리, 데이비드 G. 드 롱 共著, 김희진 譯, 『칸: 침묵과 빛의 건축가』, 2010, 미메시스,235~239p[/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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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6 at 오후 2:32

잘 읽었습니다 🙂 4.3 그룹과 루이스칸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2016.04.12 at 오전 5:19
– In reply to: Asleep Lunarian

여러모로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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