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텐 포스트’옛 아키텐 회원현 아키텐 회원들이 ‘건축’에 관련해 남긴 글을 모으는 아카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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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미술관

고 김환기( 金 煥 基 )의 예술품을 보존·연구·전시하는 미술관으로 1992년 11월 5일에개관하였다.
김환기의 예술이 갖는 귀중한 가치와 그가 생전에 미친 한국 미술계의 영향을 다시 되새기며 작가가 생전에 꿈꾸었던 한국미술의 풍부한 결실을 실현하기 위해 세워졌다.
작가가 생시에 구상하였던 현대 미술관을 구체적인 실현의 단계로 옮긴 환기미술관은 작가가 작고한 후 미망인 김향안( 金 鄕 岸 )에 의해 설립된 환기재단(Whanki Foundation)이 발판이 되어 설립되었다.
미술관 설계는 보스톤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우규승( 禹 圭 昇 )이 맡았다. 미술관이 설계되고 구체적으로 준공되는 과정에서 도미니크 보조(당시 퐁피두 센터 총관장)의
조언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시설은 본관·별관·수향산방의 3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은 3층 건물로 전시실과 수장고·관장실·학예 연구실·사무실이 있고, 별관은 1층에 카페테리아, 2층에 기획 전시실이 있으며, 수향산방(김환기와 김향안의 호인 ‘수화’와 ‘향안’에서 딴 이름)은 1층에 강의실, 2층에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김환기는 한국 현대 미술에 있어 모더니즘 제1 세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의 활동중에서 1963년부터 작고한 1974년까지의 활동을 뉴욕 시대라고 하며, 이때 가장 왕성한 열의로 더욱 확고한 자기 세계의 완성을 보였다.
즉 뉴욕 시대는 순수한 점·선·면의 조형적 요소로 보다 내밀한 서정의 세계로 진입하였다. 환기미술관은 캔버스 위에 유화 종이 위의 유화·꼴라쥬·과슈·데생·오브제 등 김환기의 뉴욕 시대 대표작 1,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기능과 역할

환기미술관은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의 상설전과 특별 기획전을 여는 동시에 현대 미술에 대한 각종 기획과 행사를 병행하고 있다.
김환기의 예술만에 국한하지 않는 또 하나의 기능, 즉 현대 미술에 대한 기획과 전시의 공간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 성격의 미술관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젊은 세대 작가들을 위한 기획전과 테마전을 1년에 2~3차례 열고 있다.
이외에도 현대 미술의 주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로 미술의 해외 교류의 프로그램을 마련, <프리환기>라는 독특한 형식의 국제전으로 비엔날레 형식으로 열고 있다.
또한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을 위한 미술 강좌로 <환기포럼>을 운영, 전문 미술인·직장인·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미술 이론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음악회·강연회·퍼포먼스 등 각종 이벤트와 행사도 마련하고 있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0829&mobile&categoryId=1634

건축가와 건축주

우규승씨는 1963년 서울대학교공과대학 건축공학 학사를 받고, 1966년동대학교에서 건축공학석사, 1968년콜럼비아대학건축대학원건축계획 석사, 1970년 하버드 건축대학원도시계획 석사학위를 취득 환기미술관을 비롯하여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한국관, 추모공원과납골당 , 하버드대학교대학원기숙사 ,메사추세츠 예술대학 아티스트 레지던스와 스튜디오 등을 설계

김환기 미술관을 짓기로 한 것은 1988년 초였고, 서울에 짓기로 했다. 김환기 화백이 생전이 우규승씨와 친했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었다. 미술관은 김환기 화백의 정서와 예술에 어울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산, 달, 구름, 바위, 나무같은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현대적인 세련됨을 목표로 생각했다.
설계를 시작할 당시의 부지는 현재 본관 주변과 뒷산을 포함하는 전면도로와의 고저차가 8m 이상이 되는 급경사였다고 한다. 설계중 서측 부지가 확보되어 당초에 의도했었지만 수용하기 어려웠던 기획전시와 집회공간을 포함한 별관 및 주차장, 정원이 계획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환기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 부암동 골짜기는 큰 건물이 들어가기에는 스케일이 작아서 힘들고, 부지는 대지면적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 형태가 복잡하였다. 반면에 미술관은 전시실 및 공용공간에 높은 천정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주거환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용적이 요구되었었고, 이러한 상반되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한 프로그램 공간을 지하에 배치하도록 계획하였고, 건물은 분절시켜 여러 기능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집합체로서의 미술관의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되었다.
건물들은 담으로 규정지은 영역 안에 중정을 중심으로 모여 있으며, 계곡의 흐름에 따라 축을 형성하였다. 이 흐름 속에서 상부의 본관 건물들은 복사면의 방향에 맞추고 남측 부속 시설은 부지 경계에 맞추어서 축의 변화를 이루고, 진입부분의 별관은 축에 맞추어서 축을 균형적으로 엮도록 하였다. 큰 흐름 속에 작은 변화들은 계속 안의 크고 작은 질서를 반영한다.
건축의 축과 계곡의 방향을 일치시킴으로써 골짜기 내에서의 공간의 흐름을 부각시키는 한편 건물들 사이에 동서 방향의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그 축을 따라 북한산성과 인왕산 등 원경을 차경으로 도입하게 되었고 일련의 벽들을 동서로 배치함으로써 좁은 계곡 건너 혼잡한 시계를 차단시켜 준다. 법규상의 조건이기도 하였지만 지상에 노출되는 건물의 높이를 대동하게 하여 전체의 지형이 암시적으로 인식되도록 하였으며 가장 높은 곳에 배치된 상설전시관은 관객 동선의 최상부에 자리함으로써 두 볼트의 형태를 가진 건축형태와 함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외곽에 위치한 부속 관리동은 각 층이 단을 지어 점차 높아지게 함으로써 주위의 작은 건물들의 스케일에 조화시키는 한편 동쪽으로 높아지는 계속의 지형을 일시적으로 연상토록 하는 의도로 구상되었다.
건물의 재료는 전통 한국건축과 같이 땅에 접하는 부위는 조적의 의미를 가진 석재로 하고 그 위는 판재로 표현된 석재, 그리고 지붕은 납을 입힌 동판으로 처리했다. 별관은 외곽의 단과 함께 고압벽돌을 사용함으로써 본관의 특수성에 대비한 보편성을 표현하였다.
미술관의 내부 공간은 중정 및 지하에 위치한 8m 입방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공간은 전시실의 기능을 겸비한 다목적 공용공간으로서 도시의 중심광장 같이 집합 및 인식의 중심역할을 하며 이 공간 주위의 환상형 계단을 통하여 각종 전시실이 연결된다. 사면의 외벽은 일광이 투사되게 함으로써 폐쇄감을 해소하고 외계와의 연계를 암시해 준다.
각 전시실과 중심공간과의 연결 부위에는 접속공간의 영역을 설치하여 각 공간의 독립된 의미를 강조시키고 동시에 미술관에서 필요한 동선, 수장과 설비시설들을 수용하도록 계획하였다.
동선체계는 일련의 환상체계로 되어있고 이들 환상체계가 간헐적으로 교차하게 함으로써 관객이 움직이는 동안 동선을 선택할 수 있는 기능성을 준다.
전시실 및 대부분의 내부 공간은 흰벽으로 처리했다. 벽과 천정 모두가 동일 재료로 그 조형성은 크기와 형태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전시를 위한 조명은 미술품의 보존 및 조명 조절이 용이한 인공조명으로 하고 드로잉 전시실을 제외한 각 층의 전시실들은 공간의 폐쇄감을 해소하기 위해 간접일광을 도입했다.

 

옥외공간은 대도시 안에 위치한 미술관으로서 충분한 휴식공간을 갖춤으로써 미술관의 경험을 풍부하게 보완할 수 있도록 담에 싸인 대지 안 북측 경사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경, 산책로 및 휴식공간으로 계획하였다. 대문에서 본관까지는 기존의 두 소나무를 중심으로 주 옥외공간을 형성하게 되어 본관 및 별관 진입을 위한 앞마당 기능을 하게 되며, 본관의 중앙에는 중정이 있고 화계가 형성된 후원 및 건물과 담 사이는 계단으로 구성된 산책로가 있다. 이들 옥외공간은 몇 개의 환상조직으로 연속된 공간을 이루는 한편 중간에 실내동선과 접하게 함으로써 전체 동선을 따라 내외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환기미술관은 계획 5년만에 준공되었다. 미술관은 계획기간과 관계없이 오랜 시간 남아있게 된다.
주거나 상업건물과 달리 시대가 바뀌고 관객이 바뀌더라도 소장된 작품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고 그 작품을 수장하는 미술관 역시 오랜 생명을 갖게 된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 오랜 후에 올 사람들 모두가 미술관의 손님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당연히 미술관에 표현되게 되는 김환기 화백이 사신 시대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역사성을 뛰어넘어 무엇보다 미술관이 자리하는 땅이 갖는 속성과 건물의 질서가 갖는 의미를 표현하는 설계를 통해 지속적인 생명력을 부여하도록 의도하였다.

건축가와 건축주

김환기(1913~1974)는 한국의 화 가 이 다 . 호 는 수 화 이 고 ,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출생이다. 1936년 니혼 대학 미술학부를 마치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4 1964년 이후 부인인 수필가 김향안과 함께 미국에 체류하며 작 품 활 동 중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 전후1 4 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가졌고, 1 9 7 0 년 한 국 일 보 사 주 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 았 다 . 작품경향은초기의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출발하여 동양적인 관조와 아취를 근간으로 한 반추상의 세계를 보이다가 미국 체류 이후에는 완전히 추상화풍으로 전환하여 옵티컬한 양식의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인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되어 다시만나랴>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인 나를 내려다 보고, 나는 어두운 하늘 한 자리에 지금 박혀 희미하게 빛을 내뿜는 ‘그’별 하나만을 바라본다.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찾아오며 ‘그’별은 빛을 다하고 푸른 새벽 하늘 속으로 숨는다. 그 별에게서 나는 잊혀지며, 나 또한 그 별을 잊는다. 몇 억광년의 거리에 너와 내가 마주했던 그 시간은 이렇게 사라져 가고, 아마 ‘그’별이 나를 알아보고, 내가 ‘그’별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시간속에서 만났으며 존재하였다.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아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되어
다시만나랴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6-IV-70 #166)»
1970년
코튼에 유채
232×172cm

미술관의 안과 밖

경복궁역에서 시작되는 미술관 답사는, 전에 가보았던 토달미술관 보다는 짧은 발걸음이였다.
하지만 부암동이라는 기억은 여전히 짙고 무거운 발걸음이였다. 환기 미술관에 다다르는 동안 미술관이 가지는 때탄 하얀 벽돌은 이곳이 미술관이라고 가르쳐 주기엔 조금은 약했다. 자그만한 간판과 전시회 현수막이 아니였다면 훅 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조금 좋은 평창동 주택같은 대문을 지나면 예상과 조금 다른 녹색을 맞이하게된다. 무수하게 덮어진 녹음들은 환기미술관을 가리는 듯 하지만, 녹음 사이로 강한 Path가 길을 자연스럽게 제시했다. 찬찬히 Path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주변의 환경들이 보이게 되는데, 이곳 부암동이 가진 지역적 특성을 주택뿐만 아니라 미술관 등에서도 이루어 질 “수” 밖에 없었던 뷰의 열림이 아닐까 생각했다.
본관의 입구쪽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 이 보인다. 문뜩 형태는 경복궁 옆에 자리잡은 (동)십자각 같은 느낌을 주지만, 혹은 안도다다오의 효고현립미술관 실내에 턱 하고 박혀있던 계단 같기도 했다. 과연 부암동이 가진 산세에 한성의 느낌을 살린 한국적인 건축이라고 입에 침바르고 얘기할 순 있겠지만, 글쎄, 처음에 가진 뚱뚱하고 조그마한 벽돌 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전혀 다른 건축같았다. 건축가가 대문 안과 밖을 구분짓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 되어진다.

큰 조적식으로 쌓아올린 벽이 마치 성벽 같다. 부암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린 것일까?

실내에 들어서면 김환기에 대한 설명이 놓여있다. 환기 미술관이 왜 환기인지 조사하지 않고 간사람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아닐까 싶었다.
미술관 자체 평면을 조사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평면에서 가지는 독특함을 그대로 알 수 가 있었다.
미술관 내 여러 전시가 이뤄지면서 필요한 공간들은 막거나 열거나 하면서 조절하는 것으로 보였다. 전시장 안은 사진촬영이 불가능했지만, 문뜩 그 공간이 액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돌아가는 동선에서 이를 기대하게 만드는 약간의 예고편이라고 할까?
안쪽에 돌아다는 벽면전시는 평소 평평한 입면의 전시관과는 문뜩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한눈, 그리고 좀더 일그러지지 않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가운데 앉을수 잇는 의자위에서 모든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라는 의미였을까?

하얀 벽면에 내리쬐는 조명과 바닥에서 반사되는 주황 불빛은, 드디어 이 건축가가 한국적인건축을 지향해왔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따. 물론 실외에서 실내로 들어서는 사이 여러 한국적 정서를 포함하는 내용들이 있다 하지만, 전혀 느끼지 못한건 순전히 나의 잘못일까?

관람자들을 위한 액자이자 예고편

하얀 벽면에 내리쬐는 조명과 바닥에서 반사되는 주황 불빛은, 드디어 이 건축가가 한국적인건축을 지향해왔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따. 물론 실외에서 실내로 들어서는 사이 여러 한국적 정서를 포함하는 내용들이 있다 하지만, 전혀 느끼지 못한건 순전히 나의 잘못일까?

드디어 한국적인 정서를 계속해서 찾기 시작했다.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꺾여 올라가게 되는데 그 사이로 빛이 세어들어온다. 불투명 유리에서 자연광을 끌어오는데, 미술관에서 가진 압박감을 풀어주는 역활을 했다. 트러스를 통과하면서 떨어지는 푸른 빛은 단순히 미술관 안에서 왔다갔다 하는동안 심심치 않은 재미를 주고 있었다.
환기 미술관은 이런 자연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안으로 스며들었다. 건축가의 의도는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미술관이 가진 수직, 수평적 공간들은 미술관을 관람하는 내내
리듬감을 갖게하기 충분했다. 성벽안에 가진 틈 사이로 인왕산의 모습은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아닌 우규승 그의 작품이 아닐까?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내려온다.

2012.10.09 건축공간론